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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미 칼럼] 선비와 귀족, 음악으로 만나다

Updated: Aug 12, 2021

유연미 논설위원 2018-05-08 09:41

 



산행길에 마주친 이름 모를 꽃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다. 서로 다른 색상과 꽃잎들은 어딘가 모르게 겉돌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은 분위기. 하나 어떤 묘한 매력을 자아낸다. 한참 후에 다시 마주친 그 꽃들, 한 공연을 떠올리게 한다. 이는 3월 16일 국립국악원의 무대에 올려진 더 뉴바로크 컴퍼니(대표 최현정)의 ‘동서양의 Salon 음악’. 지난해 우수작품의 초청공연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악기와 바로크 고(古)음악의 원전(原典)악기로 이루어진 풍류, ‘조화석습(朝花夕拾)’의 마음으로 그 여운을 풍미해 본다.


둥, 둥, 둥 … 거문고의 중후한 소리가 적막을 깬다.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그 중량감, 흐트러진 마음을 한 곳으로 모으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감미로운 아쟁과 둔탁한 소리의 장구, 절제된 모습으로 합세한다. 선비들의 몸 풀기다. 끝날 무렵, 한 귀족이 하프시코드에 살포시 손을 얹는다. 그리고 감미로운 소리로 우리나라 궁중음악의 정가(正歌)에 손짓한다. 정가는 바로 그 손짓에 아름다운 목소리로 응답한다. 정가가 끝나자 바이올린과 레코더, 그리고 첼로가 부드럽게 다가온다. 귀족들의 몸 풀기다. 다음은 선비들과 귀족들의 합동 몸 풀기. 초입의 그들 모두, 서로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묻어난다. 전형적인 신사의 모습이다. 오늘은 선비와 귀족의 음악 향연. 이 두 팀의 중재역할은 바로 정가다.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본 축제를 위한 다음 단계, 먼저 귀족들의 손이 빨라진다. 그리고 격렬해 진다. 하지만 선비들은 점잖은 손놀림으로 여유를 풍미한다. 그리고 서서히 장구의 소리와 추임새를 넣으며 소리를 키운다. 그리고 경쟁하듯이 움직인다. 이 또한 강렬하다. 급해진 귀족들이 강하게 돌진한다. 선비들도 질세라 역동적으로 합세한다. 동시에 이루어진 두 팀의 경쟁, 마치 태양의 열처럼 고조를 이룬다. 치열한 싸움에 정가가 개입한다. 이때 정가는 아름다운 선율의 목소리로 양쪽을 진정시킨다. 자제하라는 신호다. 그렇다. 아직 이르다는 징표다. 그리고 양쪽에게 경고한다. 규칙위반이라고. 정가의 역할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이에 귀족의 하프시코드가 감미로운 음으로 자중 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정가는 고맙다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답례한다. 그러자 귀족의 바이올린과 첼로가 절제되고 겸손한 선율로 머리를 조아린다.


이젠 절정의 막이 오르는 시간. 먼저 선비들이 기세 등등하여 등장한다. 장구의 당당한 선율을 중심으로 거문고와 아쟁이 합세한다. 거문고의 손놀림이 빠르며 세차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귀족들이 격렬하게 대응한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 대목은 우리나라의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전통놀이를 연상케 한다. 이때 정가는 두 팀에게 하고 싶은 만큼 뽐내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모든 것을 내 던지고 허튼 모습으로 말이다. 그렇다. 망가져 보라는 요청이다. 신바람이 난 정가도 멋진 한 곡으로 가세한다. 예의, 절제, 겸손이 허공에서 나뒹군다. 양쪽의 연주자들은 정례화 되지 않은 즉흥곡을 지칠때까지 쏟아낸다. ‘허튼 비발디 vs 산조 폴리아’의 주제에 걸맞게 말이다. 서로의 에너지가 소멸할 때까지 뿜어내는 두 팀, 절정에 이른다. 역동적이다. 순간 두 차가 위로 솟으면서 격렬하게 부딪치는 우리나라 차전놀이가 떠오른다.


그렇다. 이렇게 동·서양의 음악은 조화로운 하나로 버무려졌다. 역동과 품위가 함께 했던 두 음악, 바로 우리나라 조선시대(후기)의 선비음악과 바로크의 귀족음악이다. 이들은 외형적으로 상반된 극을 달린다. 하지만 큰 틀에서는 서로 비슷한 점들이 있다. 먼저 시대적 상황이다. 조선후기(1637- 1897)와 바로크(1600 – 1750)시대에서 맞물리는 시기다. 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음악을 즐겼던 사람들, 이들은 비전공자들이었다. 그렇다. 그들은 고상한 취미에서 그 풍류를 향유했다. 그럼에도 그들의 예술성은 뛰어났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즐겼던 장소다. 공식적인 장소가 아닌 사교장소에서 이루어졌다. 주로 선비들은 ‘풍류방’에서 그리고 귀족들은 ‘Salon’(응접)‘에서다. 그렇다. 어쩌면 ‘공간적 배경’이 다른 동서의 두 음악이 새로운 융합의 조화로운 예술로 버무려 질 수 있었던 것은 이와같은 유사한 배경 때문이 아닌가 싶다.



유연미 논설위원 편집부 yeanmi@gmail.com


출처 : 아시아타임즈 https://www.asiatime.co.kr/1786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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